《능소화 피는 골목》 4화 by kuk


 4화 - 비밀스러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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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핀  골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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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16일, 축제 다음 날.


능소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창가에 놓아둔 능소화 꽃다발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젯밤 꿈에서 본 국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능소야, 밥 무라!"


어머니의 부름에 허둥지둥 일어나 밥상에 앉았지만, 밥맛이 없었다. 자꾸만 국이가 하려던 말이 궁금했다.


"어제 축제 재밌었제?"


"응..."


"국이 그 친구가 니한테 꽃다발도 줬다 카더라?"


"어, 우쨰 알았노?"


"이 동네에 비밀이 어딨노. 다 봤지."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능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국이 그 친구, 괜찮아 보이드라. 예의도 바르고 공부도 잘 했다 카고."


"어무이..."


"그런데 서울 사람이라서 걱정이긴 하다.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능소는 뜨겁게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가리며 일어섰다.


"나는...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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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능소화 골목.


능소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한 줄도 읽히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능소화 꽃잎만 바라보고 있었다.


"능소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국이가 골목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하늘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일찍 왔네?"


"잠이 안 와서... 너도 일찍 나왔구나."


"나도 잠이 안 왔어."


둘 다 어젯밤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국이가 능소 옆에 앉자 어제와 같은 달콤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제 축제 정말 재밌었어."


"그래? 나도 그랬어."


"능소야, 어제 내가 하려던 말..."


"응?"


능소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골목 저편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능소 누나! 능소 누나!"


동네 꼬마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국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능소 누나, 우리랑 같이 놀아줘!"


"오늘은 안 돼. 다음에 놀아줄게."


"왜? 서울 오빠 때문에?"


아이들의 순진한 말에 능소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게 아니라..."


"우리도 같이 놀자!"


국이가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국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오빠, 서울에는 뭐가 있어?"


"지하철이 있고, 높은 빌딩들이 많이 있어."


"우와! 나도 서울 가보고 싶다!"


국이가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능소는 미소를 지었다.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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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자 골목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미안해, 자꾸 방해받네."


"괜찮아. 아이들이 귀여웠어."


"그래? 너 아이들 좋아하나 보다."


"응, 어릴 때 꿈이 선생님이었거든."


"지금은 꿈이 바뀌었나?"


"음... 아직 모르겠어. 너는 꿈이 뭐야?"


"나는 사업을 하고 싶어. 큰 회사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대단하다. 꼭 성공할 것 같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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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어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오후 4시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능소는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국이 생각뿐이었다.


"능소야, 밥 먹으면서 왜 자꾸 웃노?"


"어? 내가 언제 웃었노?"


"지금도 웃고 있잖아."


어머니의 말에 능소는 거울을 보았다. 정말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사랑에 빠진 것 같네."


"어무이!"


능소는 부끄러워하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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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마을 뒷산.


능소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국이가 "특별한 곳으로 가자"고 해서 마을 뒷산 정상 근처의 작은 정자에서 만나기로 했다.


"능소야!"


국이가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손에는 무언가 봉지를 들고 있었다.


"뭘 가져왔노?"


"할머니가 싸주신 김밥이랑 음료수. 소풍간다고 했어."


"소풍?"


"응, 둘만의 소풍."


국이의 말에 능소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둘만의 소풍'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달콤했다.


정자에 앉아 김밥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보니까 마을이 정말 예쁘다."


"맞제? 나는 매일 봐서 별로 예쁘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아니야, 정말 예뻐. 저기 능소화 골목도 보이고, 과수원도 보이고..."


국이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능소도 내려다보았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고향 마을이 새롭게 보였다.


"너 때문에 내 고향이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아."


"정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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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며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정자 안에는 둘만의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능소야."


"어?"


"어제 하지 못한 말... 이제 해도 될까?"


능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꼭 들어야 할 말 같았다.


"나는... 너를 좋아해."


국이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능소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달랐어. 능소화 골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너를 보고...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


"나도..."


"뭐?"


"나도 너를 좋아해."


능소의 작은 목소리가 정자 안에 울렸다. 국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정말?"


"응... 정말이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17살과 18살의 순수한 첫사랑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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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서울에 가야 해..."


국이의 말에 능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언제?"


"이번 일요일. 5일 남았어."


"..."


"능소야, 나랑 사귈래?"


"사귀는 게 뭔데?"


"연인이 되는 거야.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거."


능소는 한참을 고민했다. 사귄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국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은 확실했다.


"응... 사귀자."


"고마워."


국이가 조심스럽게 능소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이었다.


"약속해줘. 서울에 가도 나를 잊지 않겠다고."


"당연하지. 너는?"


"나도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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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오자 둘은 정자에서 내려왔다. 산길이 어두워서 국이가 능소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무섭지 않아?"


"너랑 있으니까 안 무서워."


마을까지 내려오는 동안 둘은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가끔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재빨리 손을 놓았다가 다시 잡곤 했다.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


"응, 만나자."


"몇 시에?"


"저녁에 만나자. 6시에 능소화 골목에서."


"약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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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골목 입구에서 헤어질 때, 국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능소야."


"어?"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국이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능소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눈 감아봐."


"왜?"


"그냥 감아봐."


능소는 눈을 감았다. 국이의 따뜻한 숨결이 가까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능소의 이마에 닿았다. 국이가 능소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한 것이었다.


"..."


능소는 눈을 뜨지 못했다. 너무 놀랍고 부끄러웠다.


"미안해... 너무 갑작스러웠지?"


"아니야... 괜찮아."


능소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그럼 내일 봐."


"응... 내일 봐."


국이가 떠나간 후에도 능소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마에 아직도 국이의 입맞춤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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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능소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게 진짜 키스인가?'


능소는 이마를 만져보았다. 아직도 그 순간의 감촉이 생생했다.


"능소야, 저녁 무라!"


어머니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왔다.


"어디 갔다 왔노?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그냥... 산책했어."


"혼자?"


"..."


능소의 침묵으로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이 그 친구랑 갔었구나."


"어무이..."


"괜찮다. 어무이도 젊을 때 있었다."


어머니가 이해한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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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능소는 일기장에 오늘 있었던 일을 써내려갔다.

 

 

 

 



"1984년 8월 16일, 맑음


오늘 국이 오빠가 나한테 고백했다. 나도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뒷산 정자에서 김밥도 먹고 마을도 내려다보았다. 정말 예뻤다.


그리고... 헤어질 때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게 사랑인가?


하지만 일요일에 서울로 가야 한다. 이제 몇일 밖에 안 남았다. 어떻게 하지?


능소화처럼 우리 사랑도 오래오래 피어있으면 좋겠다."


일기를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이가 떠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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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할머니 댁에서 국이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고백했다...'


오늘 하루가 꿈만 같았다. 능소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컸다. 서울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써야겠다. 매일 편지를 쓰자.'


국이는 책상 서랍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능소에게 첫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능소에게,


오늘 너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 너도 나를 좋아한다고 해줘서 고마워.


비록 서울로 가야 하지만, 내 마음은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매일 편지를 쓸게. 너도 답장해줘.


우리의 사랑이 능소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


사랑하는 국이가"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일 능소에게 줄 생각에 벌써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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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사람의 첫사랑은 시작되었다. 


능소화가 만발한 골목에서 시작된 사랑은 과연 서울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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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화 예고**


*"국이 오빠가 나한테 고백했어... 나도 좋아한다고 했고... 그런데 이마에 키스까지...

아이고, 부끄러워 죽겠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몇일 밖에 안 남았네...

우리 사랑이 이렇게 짧게 끝나는 건 아니제?

다음 화에서는 국이 오빠가 써준 편지를 받고, 우리가 더 가까워지는 이야기가 있을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


**태그: #대구근교 #시골로맨스 #1980년대 #첫사랑 #능소화 #청춘드라마 #향수 #농촌생활 #순수사랑**


**저작권: © 2025 능소화 피는 골목. 이 작품의 모든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으며, 저작권자의 사전 허가 없이 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 방송, 각색, 번역 등의 행위를 금지합니다. 위반 시 저작권법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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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mydalpong

잘 보고 갑니다~


2025. 6. 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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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거북이

잘 보고 갑니다~


2025. 6. 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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