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소화 피는 골목》 8화: 소식이 끊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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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었지만, 능소의 마음은 한겨울처럼 차갑고
공허했다.
국이의 편지가 끊어진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부대
사정으로 편지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능소는 점점 불안해졌다.
"김씨 아저씨, 오늘도 편지 없어예?"
우체부 김 아저씨는 능소의 애타는 표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능소야. 오늘도 없구나."
"그럼 혹시 제가 서울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들이 잘 전달되고 있슴니까?"
"그럼, 네가 부친 편지들은 다 서울로 잘 갔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
능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두 달 동안 세 번이나 편지를 보냈지만, 단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능소는 능소화 골목을 지나쳤다.
아직 능소화가 피기에는 이른 계절이었지만, 이곳에 오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골목 끝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능소는 주머니에서 국이가 준 약속반지를 꺼내 보았다.
반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빠...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능소는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약속을 어기고 편지를 보내지 않는 국이에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픈 것은 아닐까?
"능소야, 여기 있었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능소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
"또 편지 생각하고 있지?"
어머니는 딸의 곁에 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 국이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예? 이렇게 연락이 없을 리가
없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씀이라예?"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능소의 손을 잡았다.
"능소야, 어머니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네?"
"그 애가 정말 좋은 애인 건 어머니도 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늘 한결같지는 않은 법이야."
능소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무슨 뜻이라예?"
"능소야, 혹시 그 애가...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그럴 리 없어예! 국이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이라예!"
능소는 격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이 마음 한구석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의심을 건드렸다.
"능소야,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를 상처주려는 게 아니야.
다만 너무 기다림에만 매달리지 말고, 네 인생도 생각해봤으면 해서..."
"어머니, 저는 국이 오빠를 믿어예. 분명히 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거예요."
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딸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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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능소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머니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정말 국이 오빠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능소는 결심을 했다.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직접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출근한 능소는 사서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혹시 군부대에 직접 연락하는 방법이 있을까예?"
"군부대에? 왜?"
"제가 알고 있는 분이 군대에 있는데, 편지가 안 와서 걱정이 되어서요."
사서 선생님은 능소의 사정을 짐작하고 동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글쎄... 일반인이 군부대에 직접 연락하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적십자를 통해서 안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있을 거야."
"적십자요?"
"응, 한번 알아보자."
며칠 후, 사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능소는 적십자를 통해 국이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능소야, 그 사람 멀쩡하게 부대에 있다고 하네."
"정말이에요?"
"응, 건강하고 아무 이상 없다고 해."
능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국이가 건강하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그럼 왜 편지를 안 보내는 거지?'
그날 저녁, 능소는 다시 국이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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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오빠에게*
*오빠, 안녕하세요. 두 달 동안 편지가 없어서 많이 걱정했어예.
혹시 아프신 건 아닌가 해서 적십자를 통해 안부를 확인해봤는데,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빠, 왜 편지를 안 보내세요?
제가 뭘 잘못했어예?
아니면 제 편지가 오빠한테 전달이 안 되는 건가예?*
*저는 여전히 매일 오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예.
약속반지도 매일 보면서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예.*
*오빠, 제발 답장 보내주세요.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예. 그냥 오빠가 건강하다는 소식만 들려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예.*
*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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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부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국이의 편지가 도착했다.
"능소야! 편지 왔다!"
우체부 김씨 아저씨의 목소리에 능소는 뛰어나갔다.
정말로 국이의 편지였다. 하지만 봉투를 보는 순간, 능소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글씨가 평소보다 성의 없어 보였다.
능소화 골목으로 뛰어가서 편지를 뜯었다. 편지는 예전보다 훨씬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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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편지를 늦게 보낸 이유는 부대 사정이 바빠서 그랬어. 미안해.*
*요즘 훈련도 많고, 작업도 많아서 편지 쓸 시간이 없었어. 앞으로는 더 바빠질 것
같아.*
*너도 네 일에 집중해. 도서관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하고.*
*건강하게 지내.*
*국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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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난 능소는 당황했다.
이게 정말 국이가 쓴 편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갑고 간단했다.
예전의 애정 어린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사무적인 내용뿐이었다.
'이상해... 이게 정말 국이 오빠가 쓴 편지일까?'
능소는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지만, 예전 국이의 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움을 담은 다정한 말들, 사랑한다는 표현들, 상세한 부대 생활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능소의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왜 편지를 안
보냈는지, 능소의 편지를 받았는지, 약속반지는 잘 보관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능소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어머니, 이 편지 좀 보세요."
어머니는 편지를 읽고 나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능소야..."
"이상하죠? 예전 국이 오빠 편지 같지 않아예."
"그러게... 많이 다르네."
"어머니, 혹시 국이 오빠가 다른 여자를 만난 건 아닐까예?"
능소는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왔던 의심을 털어놓았다.
"그럴 수도 있고..."
"어머니!"
"능소야, 어머니가 뭐라고 할 수 있겠니? 그 애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어머니의 말에 능소는 더욱 절망적이 되었다.
그날 밤, 능소는 잠들지 못하고 국이의 예전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사랑이 가득 담긴 따뜻한 편지들과 오늘 받은 차가운 편지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정말 마음이 변한 건가?'
능소는 약속반지를 꺼내 보았다.
아직도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빛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부터 능소는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도서관에서 일할 때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웃음도 잃어갔다.
"능소야, 무슨 일이니? 요즘 많이 우울해 보여."
사서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생님."
"그래도 뭔가 걱정이 있어 보이는데..."
"정말 괜찮아예."
하지만 능소의 모습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한 달 후, 능소는 다시 국이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 편지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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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k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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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오빠에게*
*오빠, 지난번 편지를 받고 많은 생각을 했어예.
오빠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 건가예? 아니면 저를 잊고
싶어하는 건가예?*
*만약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제발 예전처럼 편지를 써주세요. 저는 아직도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예.*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게예. 이번에는 꼭 진심을 말해주세요.*
*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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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부치고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오늘도 편지 없어예?"
"응, 없다."
우체부 김씨 아저씨도 이제는 능소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매일 편지를 기다리는 능소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능소야, 어쩌면 그 사람이 답장을 안 보내는 게 답인지도 모르겠다."
"아저씨..."
"사람이 정말 답장을 하고 싶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법이야.
답장을 안 한다는 건..."
김씨 아저씨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능소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능소는 마지막으로 능소화 골목을 찾았다.
벌써 4월이 되어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곧 능소화도 피어날 것이다.
"오빠... 정말 끝인가봐예."
능소는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국이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약속반지를 꺼낸 능소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느티나무 아래 묻었다.
"오빠와의 약속도 여기 묻을게예. 이제는 정말 안녕이에요."
능소는 일어서서 골목을 떠났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후로 능소는 더 이상 편지를 기다리지 않았다.
우체부 김 아저씨에게도 편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보며 안쓰러웠지만, 어쩌면 이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능소야, 이제 네 인생을 살아야 해."
"네, 어머니."
"그 애 때문에 네 청춘을 다 보낼 수는 없잖아."
"알고 있어예."
능소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깊은 상처가 숨어있었다.
5월이 되자 능소화가 다시 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능소는 더 이상 능소화 골목을 지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을 바꿔서 다른
길로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능소가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밝지 않았고, 웃음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어느 날 저녁, 능소는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떠난 조용한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눈물이
나왔다.
"오빠... 정말 저를 잊은 거예요?"
혼잣말 속에 담긴 슬픔이 도서관을 가득 채웠다.
밖에서는 능소화가 만발한 계절이었지만, 능소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첫사랑의 끝은 이렇게 쓸쓸했다.
그리고 능소는 아직 몰랐다. 국이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몇 년 후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의 능소에게는 그런 희망조차 사치였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상처를 치유해나갈 뿐이었다.
능소화가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능소의 첫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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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회 예고
*"이제 정말 포기해야 하나 싶어예. 국이 오빠는 저를 잊은 것 같고... 어머니는
자꾸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주려고 하시고... 그런데 마음이 쉽게 정리가 안
되네예.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마음 한구석에 오빠가 남아있는 것 같아예. 이제
진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건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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